광기의 저택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
Escape from Innsmouth
올해는 광기의 저택의 해인가? 그야말로 미친듯이 플레이하고 있다. 일단 번역된 시나리오는 모두 플레이하게 될 것 같고 DLC도 나오는 대로 즐기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이어지는 광기의 저택 올클리어 팟! 이번에는 무려 난이도 4개인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이다. 제목에 탈출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꽤 쫄깃한 시나리오일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광기의 저택은 이런 류의 테마에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게임이다.
보통 탈출이라고 하면 턴제보다는 액션성이 강조된 리얼타임이 훨씬 재미있다는 편견이 있지만 턴제는 턴제 나름의 맛이 있다. 액션 장르에서 탈출은 컨트롤이 중요하지만 턴제 장르에서 탈출은 전략이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장소까지 가는 최적의 루트를 찾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광기의 저택은 다양한 시야 범위 개념(칸/범위/구역, 시야 제한(벽))을 도입하여 공간감을 형성하고, 이것을 이용해 같은 장소로 이동하더라도 여러 개의 루트를 고려할 수 있게끔 만든다.
가령 A라는 칸으로 이동할 때 B라는 루트와 C라는 루트가 있다고 해보자. 둘 다 2턴에 걸쳐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루트이지만, B루트는 신화 생물의 공격 범위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거리는 같더라도 C루트를 선택하게 된다. 또는 B루트와 C루트 모두 같은 범위 안에 있기는 하지만 B루트는 바로 이동할 수 있고 C루트는 벽에 막혀 있어 이동할 수 있다면 B루트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광기의 저택은 탈출 장르에 꼭 필요한 스트레스 디자인이 비교적 간편하게 되어있다. 정해진 루트로 이동하기만 하면 탈출물이 성립되지 않는다. 적절한 방해 요소가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여 그 루트에 난수를 더해야 한다. 광기의 저택은 '신화 단계'라는 스트레스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별도의 타이밍을 디자인하지 않아도 신화 단계가 시작될 때 미리 기록해둔 플레이어의 행동을 토대로 장애물을 제공하면 된다. 때문에 탈출 장르에 꼭 필요한 스트레스 디자인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특히나 스트레스 디자인이 잘 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잘 된 스트레스 디자인이란 플레이어가 스트레스의 발생 요소를 장악하고 이것을 플레이에 응용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는 플레이어가 쉽게 파악하고 응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을 뿐만이 아니라 서사와도 잘 연계되어 있어 게임에도 쉽게 몰입하게 된다. 이 스트레스 요소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잘 만든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긴장감을 주는 요소를 등장시키고, 그것이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하게 한 뒤, 위험 요소를 관리하여 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한다.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은> 게임 디자인의 기초에 속하기도 하는 이 세 가지 단계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 시나리오다. 레벨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플레이해봐도 좋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보상 디자인이다. 탈출 장르에서 스트레스 디자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보상 디자인이다. 자발적으로 스트레스 요소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게임과 달리 (가령 RPG에서 레벨 업을 위해 몬스터를 찾아다닌다든가) 탈출/협력 장르는 플레이어에게 강제적인 스트레스를 부여한다.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스트레스를 줘야하기 때문에 그만큼 보상 디자인을 철저하게 신경써야 한다. 특히나 이런 탈출 장르는 목적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보상감을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에 중간 중간 어떤 식으로 플레이어의 의욕을 고취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이런 류의 게임에서 보상을 부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적절한 단서의 제공이다. 스트레스 요소를 이겨내고 게임을 진행하는 가운데 탈출에 필요한 단서를 얻으면서 의욕을 고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의 경우 후반까지 탈출에 필요한 단서를 획득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어느 정도 단서를 획득했다 싶었을 때에는 이미 게임이 끝나버린 상황. 플레이가 미숙한 탓도 있겠지만 중요한 단서가 너무 깊은 뎁스가 들어가 있어 후반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이는 느낌이 들었다. 정보의 복잡도가 높은 만큼 탈출 과정이 뻔하지 않아 재미있긴 했지만 제대로 맛볼 수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광기의 저택이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한 탈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겠다. 스트레스 요소를 서사와 잘 엮어서 몰입도를 높이고, 플레이어가 스트레스 요소를 장악하고 관리할 수 있게끔 만든 시나리오다. 정보의 뎁스가 깊어 중간 중간 보상감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이 단점이지만 그만큼 탈출 방법이 뻔하지 않고 흥미롭다. 광기의 저택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한 번쯤 맛봐야 하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이후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에서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선택 PC : 민티 판 / 리타 영 / 프레스턴 페어몬트 / 마테오 신부
이번 탐사자의 조합입니다! 역시나 승리의 리타영(?)은 빼놓을 수 없는 인재이고ㅎㅎ 개인적으로 이번엔 사제가 활약을 많이 못해서 아쉬웠네요. 뭔가 사제는 시나리오를 좀 많이 타는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고ㅠ 이러나저러나 리타영이 최고입니다. (이래놓고 이 사람은 민티 판을 골랐으며)
여하튼 이번 시나리오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믹이라면 역시 폭도입니다. 폭도 기믹은 정말 놀랍고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데 몇턴 지나고 보니 마을 주위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라 동선만 겹치지 않도록 움직이면 싸울 상황은 안 벌어지기도 했고요. 물론 후반부에는 폭도가 출몰하면서 개판이 되었지만^^;; 다행히 저희는 폭도와 부딪치는 일이 없었는데 부딪친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말 폭도들한테 맞는 것처럼 게임 끝날 때까지 질질 끌려다니면서 맞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더라고요. 호오… 흥미로운 기믹입니다.
폭도를 피하면서 필요한 단서를 모으고 최종적인 목적지에 가는 것이 이번 시나리오의 목표인데요. 이번 시나리오는 단서를 기묘하게 배치해둬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중요한 뎁스의 정보가 있고, 중요한 사람에겐 위협이 있는 식이라 시종일관 긴장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부터 조사하느냐에 따라서 클리어 시점이 크게 달라질 것 같은 느낌?
그런 점에서는 좀 단서가 될 만한 요소를 많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약간 아쉽기도 했네요. 몇 가지는 운빨로 진행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어서 합리적인 플레이가 어렵지 않은가 싶었거든요. 다들 기껏 고생해서 열심히 돌아다닌 죄밖에 없는데 조금 늦어서 배드 엔딩이 떠버리니까 씁쓸한 느낌. 이걸 방지하려면 초반 도입에서 확실한 후킹 거리를 제시하고 그걸 조사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가 무엇인지 플레이어들이 사전에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선 시나리오에서 그런 것들을 제공해줘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어디로 가야 뭘 할 수 있는 건데? 우리가 찾는 그건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이런 대사 많이 나와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냥 열심히 폭도 피해서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저거 조사 안해본 거 같으니까 가보자 하면서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게 전부였거든요. 이런 구석진 조사를 요구하는 시나리오였던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야 폭도 기믹이 의미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서로 가는 단서가 적었던 건 아쉬운 부분 중 하나네요.
진상으로 가는 루트 자체는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히 뭘 부수거나 어디로 가느냐보다도 탈출로 가는 여러가지 조건이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진짜로 살아남기 위해 협력해서 단계를 밟아가는 느낌이라 좋았어요. 마을이 수상하다는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고, 탑에서 종을 울려 배를 부르고, 폭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 배를 향해 뛰어가는 그 긴박감이라니! 성공했으면 굉장히 짜릿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짜릿했겠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도 기믹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원리 자체도 훌륭했지만, 설정과 그 원리가 딱 맞아떨어지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마을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탐사자들을 찾아다니는 한 무리의 폭도라니! 체력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서 플레이어들이 마냥 때려서 잡을 수 없게 해둔 점도 좋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폭도들이 쏟아져나오는 것도 마을의 광기가 고조되는 기분이라 더 좋았습니다. 이런 폭도들을 뚫고 배를 불러서 도망치는 시나리오라니... 서사와 기믹이 잘 엮인 흥미로운 시나리오였던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는 패배했지만ㅠ 이제 이 게임에도 많이 익숙해지고 있으니 다음 시나리오는 꼭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아, 진짜 한 번만 첫 편에 클리어해보자! 정말 재미있었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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