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저택

산산조각난 봉인

Shattered Bonds


 

 

 어느 날, 그레이스 베크만으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자신과 가족들을 노리고 있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저택 안에 도사리는 음산한 그림자, 그리고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듯한 가족들... 과연 이 저택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무려 별 4개짜리 시나리오인 <산산조각난 봉인>의  플레이를 해보았다. 어려운 시나리오인 만큼 바짝 긴장하고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광기의 저택에 익숙해진 탓인지 겁먹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결과는 패배했다(..) 대체 언제쯤 첫 플레이에 클리어할 수 있을지!

 

 아무튼, 패배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체감 정도로 따지면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 쪽이 훨씬 어려웠다. 핵심 정보로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한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에 비해 이 시나리오는 진상으로 가는 단서가 꽤 빠른 시간 안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확실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진행이 거슬리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위기 관리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라 다른 시나리오에 비해 동선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점도 좋았다. 광기의 저택이 가진 게임적 요소를 잘 활용한 시나리오다.

 

 광기의 저택은 결국 동선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이다. 단서를 얻든 전투를 하든 결국 모든 것이 '이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이동을 거쳐 목적 지점에 도착한다, 이것이 코어 매커니즘이다. 그러니 레벨 디자인의 핵심은 이 이동하는 과정을 어떻게 하면 어렵게, 그리고 재미있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도식으로 구조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때 진행 난이도를 결정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개별 퀘스트의 이동은 어렵지만 위험 요소의 관리는 쉽거나, 개별 퀘스트의 이동은 쉽지만 위험 요소의 관리가 어려운 쪽이다.

 

이동은 어렵고 위기 관리는 쉽다 (조사/추리 중심)

 

이동은 쉽고 위기 관리는 어렵다 (액션 중심)

 

 전자는 조사와 추리가 중요한 서사 중심의 시나리오에서 사용하고, 후자는 위험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와 빠른 목표 설정이 중요한 시나리오에서 사용하면 좋다. 전자의 사례가 <밀물>이라면 후자의 좋은 사례가 바로 <산산조각난 봉인>이다. <산산조각난 봉인>은 시나리오에서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위험 요소를 파훼하면서 빠르게 최종 목적지까지 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험 요소의 디자인 또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위험 요소 자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개의 위험 요소를 동시다발적으로 터트리는 것이다. 전자는 하나의 위험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서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쳐야하기에 긴 호흡의 시나리오에 어울리고, 후자는 여러 개의 위험 요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기에 짧은 호흡의 시나리오에 잘 어울린다. 여기서는 전자가 <인스머스로부터의 탈출>이고 후자가 <산산조각난 봉인>에 속한다.

 

하나의 위험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뎁스는 깊게 만드는 방식

 

여러 가지의 위험 요소가 동시에 발동하는 방식

 

 즉, <산산조각난 봉인>은 위기 관리를 중심으로 긴박감을 이어나가는 시나리오다. 이런 류의 협력형 게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성이지만 광기의 저택 고유의 플랫폼에 어울리는 스트레스 요소를 잘 구현하고 있다. 플레이어들이 단합해서 노력하면 아슬아슬하지만 클리어가 가능한 정도의 딱 좋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초기 시나리오들을 어느 정도 즐겼다면 바로 플레이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나리오 자체보다는 게임의 문제인데... 이것까지 포함하여 이하의 페이지에서 자세히 애기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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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PC : 리타 영


 이 시나리오의 목적은 제목에 걸맞게 봉인된 조각상을 모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화 생물이 저택 안을 돌아다니며 NPC와 PC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들이 오기 전에 NPC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위기에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이 과정에서 다양한 동선과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핵심 매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 생물의 영향력이 다른 시나리오에 비해 꽤 가혹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플레이 타임이 너무 길어지면 이성이 팍팍 깎이다가 정신 이상 상태에 빠지기 쉽상입니다. 실제로 저희 플레이에서도 정신 이상자가 두 명이나 발생하는 바람에 클리어에 실패한 케이스이고요.

 정신 이상 시스템 자체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몇몇 카드들 (방화광이라든가) 때문에 협력형으로 진행되던 게임이 후반부에 갑자기 PVP로 바뀌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게임의 성격 자체가 달라져 버려서 중반까지 차곡차곡 진행해온 흐름이 다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크툴루 기반의 게임들이 그런 불합리한 전개를 선호하는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게임적으로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것들이 랜덤으로 무효가 되는 건 너무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후의 플레이에서는 그런 카드들은 덱에서 제외하는 하우스 룰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 편이 훨씬 시나리오에 몰입하기도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런 PVP성 카드들이 있을 때는 절대로 정신 이상에 걸리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들어 게임 플레이가 훨씬 밀도가 높아지기도 합니다만, 일단 정신 이상이 한 명이라도 터지면 그때부터는 게임의 흐름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요소로도 썩 좋지 않은 듯 합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그런 게임적인 아쉬움은 있었을 지언정 시나리오 자체는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신화 생물이 온다는 예고가 떨어지면 NPC들을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상황상 모두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는 없다보니 때로는 희생하는 카드를 골라야하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한시라도 빨리 조각상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박감도 유지되고요. 이 과정에서 동선을 아주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는데 광기의 저택이 가진 핵심 매커니즘을 아주 잘 구사한 부분이라고도 생각해요.

 '저택'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사용해서 이런 구성을 한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고요. 광기의 저택이 가진 최대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가 공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인데 (그것도 대부분의 배경이 저택) 저택을 배경으로 이런 식으로 긴박함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저택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군요. 다음에 방문하게 될 저택에선 또 어떤 기묘한 일이 벌어질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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