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저택
밀물
Rising Tide
인스머스에 예고된 끔찍한 의식,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는 여섯 명의 용의자. 그 와중에 밀물이 인스머스를 덮치려고 한다. 과연 탐사자들은 밀물이 인스머스를 행하기 전에 의식을 치르려는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무려 240~360분의 플레이 타임을 자랑하는 대형 시나리오다. 오죽 길면 플레이 전에 디바이스를 꼭 충전해두라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플레이 타임이 이렇게 긴 걸까? 어쨌든 이런 시나리오는 한 번에 쭉 몰아서 플레이하는 게 정석인 법이다. 주말에 날을 잡아 풀파티로 플레이를 진행했다.
이 시나리오는 기존의 시나리오들과는 플레이 감각 자체가 다르다. 전투와 탐험, 퍼즐 맞추기가 주가 되었던 기존의 시나리오에 비해 이 시나리오는 추리와 조사가 중심이 된다. 단지 NPC나 오브젝트를 조사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플레이어에게 추리를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 제한된 턴 안에서 가장 유효한 정보를 취득하고 마지막에는 진상을 추리하고 클라이맥스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추리물의 문법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추리물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광기의 저택에서도 추리물의 향취를 맛볼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밀물에서 사용된 방식을 채용해서 다른 형태의 추리 시나리오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이 시나리오 하나로 족하기엔 좀 아쉬운 지라...
그러나 내용 자체는 매우 빈약한 편인데, 스토리 자체도 조금 허술할 뿐더러 이 시나리오 고유의 기믹(스포일러 포함인 파트에서 상술) 때문에 내용이 깊어질래야 깊어질 수가 없는 구성이다. 그래서 추리물의 형식을 차용하긴 했지만, 본격 추리물 플레이하듯이 너무 진지하게 플레이하면 안 된다(..) 그래서 플레이해서 실망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긴 하지만 돌아보면 스토리의 퀄리티는 매우 아쉬운 편에 속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믹을 없애고 스토리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 게임이 나올 당시 보드게임계의 흐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 포함한 후기에서 후술하겠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나 퍼즐보다는 수사와 추리가 중심이 된 구성 덕분에 기존의 시나리오들과는 다른 플레이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던 시나리오다. 중간 중간 전투가 등장하면서 긴장감을 주는 것도 좋지만, 그런 류의 시나리오들은 아무래도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중후반쯤 되면 스토리의 개요 같은 것은 다 까먹고 코어 게임에만 집중하게 된다.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으로선 조금 아쉬웠다. 그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나리오였다. 아마도 광기의 저택을 플레이하면서 처음으로 NPC의 사정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하나, 이 시나리오는 광기의 저택에서 '스케일'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광기의 저택의 특성상 저택에 한정된 좁은 공간, 기껏해야 도시의 시내 하나 정도의 공간만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는데 이 시나리오는 기존 시나리오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제공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판으로 완성된 맵 위에서만 움직이던 것과 달리 이 시나리오는 여러 개의 장소를 이동한다는 설정을 통해 다양한 장소에 가볼 수 있다. 덕분에 고유의 폐색감은 줄어들고 자유도가 늘어나서 좋았다. 제한된 타일을 이용해서 다양한 장소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정리하자면 광기의 저택에서 구현할 수 있는 문법을 활용해서 최대의 스케일을 선보인 추리 중심의 시나리오였다고 할 수 있곘다. 전투와 퍼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아쉬울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존의 시나리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광기의 저택을 어느 정도 플레이해봤다면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 접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다른 시나리오를 해본 뒤에 접하는 것이 좋다. (그만큼 신선하게 느껴진다.)
나머지는 이하의 후기에서 작성하겠다.
선택 PC : 민티판
문제가 된 기믹은 바로 랜덤하게 범인이 결정되는... 그것입니다. 당시 보드게임에서는 '리플레이성'이 매우 중요시되던 시대다 보니, 광기의 저택에서도 리플레이성을 억지로 우겨넣은 부분들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시나리오가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판데믹의 대성공 이후로는 레거시 스타일이 대세가 되어서 리플레이성보다 깊은 1회성을 중시하는 추세가 되었지만요. 시대를 앞서가고 말았구나 -.-;; 아무튼, 요즘 나왔더라면 이런 구성은 절대 취하지 않았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범인이 랜덤하게 결정되는 것도, 전에 시나리오를 플레이하셨던 분이 예전과 범인이 다르다고 알려주셔서 겨우 알아내긴 했지만요. 좋게 생각하면 판마다 범인이 다른 거니까 다 알고 처음부터 플레이해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듭니다. 그로 인해 스토리가 허접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ㅠ 그래도 리플레이성을 포기하고 스토리의 완성도에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네요. 기껏 열심히 고민해서 추리했던 거에 비하면 너무 진상이 형편없었거든요ㅠ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시나리오는 플레이어가 조사 지역을 직접 결정하고 움직이면서 단서를 모으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드게임이라기보다 TRPG, 특히나 크툴루의 부름에 가까운 구성인데 이렇게나 본격적인 수사 룰을 구성해놓고 진상이 얄팍해버리니 김이 다 새는 느낌ㅠ... 솔직히 이 정도면 추리도 필요 없잖아요! 그냥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 잡으면 되잖아요ㅠㅠㅋㅋㅋ 의심스러운 사람을 찾는 그 과정 자체가 이 시나리오의 재미라는 건 알겠는데 ㅇ)-( 혼끼로 열심히 스토리 구상하면서 진범 잡으려고 했던 우리가 불쌍하잖아... (털썩)
뭐, 추리 과정이 너무 어려워도 안되겠다 싶긴 해요. 사실 정정당당한 추리 대결을 하려면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거기서부터 인과 관계를 맞추게끔 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이 게임은 특성 상 정보를 모으는 단계부터 시작합니다. 수사와 탐문을 통해 플레이어 스스로 핵심적인 정보를 모아야해요. 달리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모든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교한 추리 과정 그 자체보다 핵심적인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클리어의 조건이 되는 구조에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건의 흐름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보를 얻는 것 자체가 코스트가 드는 행동이라면 추리 과정은 쉽게 만드는 게 밸런스가 맞겠죠. 추리물의 구조를 가져온 건 좋았지만 역시 이 게임으로 온전한 추리물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네요. 굳이 온전한 추리물을 구현할 필요도 없지만요! 하지만 구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일단 광기의 저택으로 이런 유형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된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하나씩 플레이할 때마다 새로운 기믹과 아이디어를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ㅎㅎ 정통적인 저택물부터 시가지물, 거기다 좀 더 본격적인 추리물까지 가능한 갓겜 광기의 저택... 이번에도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ㅠ0ㅠ)9 매번 정말 혼이 빠질 정도로 재미있게 즐기고 있어요ㅠㅠㅠ 남은 시나리오와 확장판도 모두 클리어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후기를 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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